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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 움트는 2월 말, 경기도 양평시에 위치한 평화로운 갤러리.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봄 내음새가 반겨주는 따뜻한 작업 공간.마당에는 VOGUE 20주년 기념으로 보그와 같이 작업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는 이곳에서 ‘빛의 예술가’ 안종연 작가를 만났다.

안종연 작가의 자택 겸 작업실은 마치 작은 미술관에 온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 눈에 보아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LED유리구슬들이 반겨주며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었다.

Q. 요즘 근황은?

매일매일 작업하고, 구상하고, 드로잉한다. 매일매일 작업한다고 작품이 금방 나오는 건 아니고, 매일 작업하는 시간이 다 모여야 한 달 정도 걸린다.

Q. 대표 작품과 주력 분야는?

대표적으로 좌화취월, 광풍제월, 수광영월 등이 있는데 방금 말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라이팅 작품이고, 주로 공공미술이다. 작가로서 하나하나 한 점 한 점 작품 하는 건 따로 전시 준비도 하고 있고, 하나씩 고쳐가면서 전시 해 보일 것을 또 다시 준비 하고 있다.

2010년에 한국에서 큰 전시를 했는데, 그 이후에는 쭉 외국 전시 순회를 하면서 단체 전시 했었고 작년부터는 아부다비 전시를 하고 있다. 인터시티(intercity)라는 개념으로 월드투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이라는 도시와 다른 나라의 수도를, 부산이라는 도시와 다른 나라의 수도를 연결하는 개념이다. 계속 그 전시를 하기 위해서 작품 준비를 하고 있고, 아부다비 창고에는 그쪽 공동 전시를
하기 위한 작품이 있고, 인도네시아와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작업을 계속 하고 있으니 쉴 수가 없다. 앞으로 더 많은, 더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나는 평면 그림을 그려도 그림이고 도시를 그려도 그림이고, 그러니까 내게는 모든 작품이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일 뿐인 것이다. 나는 공공미술과 내 온 작품을 구별을 하지 않는다. 다 같이 내 작품이니까. 

그저 장소에 맞는 작품, 자연에 맞는 것, 어두운 곳에 맞는 것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Q.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따로 있나?

내가 작품 하나 할 때 바램이 있다. 어릴 때는 작품이 그냥 ‘표현’이었는데, 이제는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작품을 보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작업한다. 어떤 사람의 얼굴을 주문하면 몇 번 만나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면 서로 행복하지 않나. 작품은 소통이다. 그리고 서로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하고 싶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면서 정말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작품은 말을 하고 있다. LED유리구슬을 보더라도 이 작품은 계속 색이 변하면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몰입을 하지 않으면 확실한 전달이 되지 않는다. 저 얼굴 작품 하나도 몰입하다 잠깐 딴생각 하면 그건 아예 저 사람이 아니다. 다른 그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보통 그런 작업할 때 두 세 장 정도 버린다. 90%까지 작업하고 버려야할 땐 조금 억울하지만(웃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늘 완벽하기를 바라는, 작가로서는 모자람도 즐겨야 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만족스럽지 않을 땐 내 보이지도 못하니까. 

일단 작업을 하면 적어도 6-7개월은 내 눈에 익어야 하고. 가요 하나가 나오더라도 귀에 많이 익어야 인기가 올라가는 것 같은데, 작품도 많은 사람이 보고 많이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화사한 걸 봐도 순간 행복해질 수 있듯이.

사실 내 작품의 베이스는 우리 민화가 기본이다. 우리 민화만큼 스토리텔링이 확실한 작품이 없다.

Q. 빛에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최근 관심사는?

빛 자체는 우리 생명의 근원이니까 너무 방대하고, 지금은 옛날 작품에서 완전히 새롭다기 보다는 그때 발표하지 못한 작품을 다시 제작해본다던가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작가들이란 한 번 생각한 것을 그때그때 발표한다고 해도 다 할 수가 없다. 한 15% 정도? 남은 85%를 계속 누에고치가 실 뽑아내듯이 뽑아내는 것이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꼭 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실현되기까지는 경제적 자본도 있어야 하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1년 안에는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이고 2년 안에는 큰 그림이 완성될 것 같다. 주제는 '연자락'이다. 남녀노소 자연 속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로서 정말 좋은 작품을 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을 하다 죽고 삶을 살고 싶다. 외국 작가 루이스 부르조아 할머니가 죽는 날 아침까지 드로잉을 하다 죽었다고 하는데 그게 참 부러웠다. 보통 아프면 붓을 놓는데, 정말 대단하기도 하지만 ‘저 정도는 되어야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 힘든 작가생활을 평생 했다.
지금 60대 후반인데, 다른 낙이 없다(웃음)

"너무나 완벽한 좋은 작품은 보는 이들이 이해하는 작품인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인터뷰 독자분들께 한 마디

대단히 존경받을 사람도 아니고 그냥 작가로서 산다고 힘들게, 어떻게 보면 너절한 삶을 살았지만, 이렇게 단지 어떤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버티고 가보는 것.
그건 참, ‘내가 지금까지는 해오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 있을 때 한 작가의 에세이를 보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이 모르는 길모퉁이를 돌아가는 것과 같다.’ 라고 써있더라. 모퉁이를 돌아간다는 건, 그 모퉁이 뒤에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지 않나. 기대와 호기심과 또 불안. 이 모든 것을 가진 게 모퉁이다. 그런 작가의 삶이 그래도 이렇게 유지되어오고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가만히 보면 괴로움이나 위기에 약한 것 같다. 우리들은 강단으로 버티고 있는데, 좀 안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젊은이들을 슥 보면 안다. 조금만 피곤하면 관두는데 그럴 때 내가 무척 답답하다.

질겅질겅 버티는 힘, 이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연자락의 풍경에 빨리 가는 건 없다. 그저 천천히 생각하면서.
2007년에 움브로이라는 곳에 갔다. 그냥 천천히 걸었는데, 아주 소규모 미술관이지만 천천히 걷는 느낌이 참 좋았다. 아무튼 아주 작고, 소박하고, 천천히 가는 미술관. 랜드 자체가 미술관인 곳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지금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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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하며 작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빛의 예술가 안종연 작가. 앞으로 완성될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질 수 있는 그녀의 작품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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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어_엠유 배우미